열하일기로 본 북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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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11-11 02:3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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朴趾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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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지원
1737년~1805년
그의 제자로는 박제가, 유득공,
이덕무 등이 있다아
어린 시절 박지원은 1737년(영조 13) 한양 서부(西部) 반송방(盤松坊 : 야동(冶洞))에서 박사유의 아들로 출생하였다.
북학이란17~18세기 청(淸)에서 일어난 실사구시의 학문을 우리나라에서 일컫는 말인데, 조선 후기 18세기에 일어난 북학운동은 바로 이 북학을 배우자는 운동이었다.레포트/감상서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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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하일기로 본 북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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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하일기로 본
북경北京
`황도기략`
熱河日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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`목차`
열하일기 저자 박지원
열하일기
열하일기에서 본 북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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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지원
1737년~1805년
《열하일기》, 《연암집》, 《허생전》 등을 쓴 조선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.
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,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
여러편의 한문소설 (漢文小說)을 발표하였다.
朴趾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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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하일기란
(熱河日記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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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하일기(熱河日記)란
열하일기(熱河日記)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박지원이 44세 때인 1780년(정조 5년)에 박명원(朴明源)이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(萬壽節, 칠순잔치)사절로 북경에 갈 때 따라가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이다.
연암이란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.
본관은 반남(潘南), 자는 미중(美仲) 또는 중미(仲美), 호는 연암(燕巖), 시호는 문도(文度)이다.
1777년(정조 1년) 권신(權臣) 홍국영에게 벽파(派)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이듬해 황해도 김천(金川) 연암협(燕巖峽)으로 은거하였다.
朴趾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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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지원
1737년~1805년
박지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였고 청나라의 우수한 점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 계열로, 상공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상주의를 주장하였다.
이 과정에서 중국(China)의 발달된 사회를 보고 실학에 뜻…(투비컨티뉴드 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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